"정의란 과연 무엇일까?"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은 왜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과 정치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 글에서는 현대 정의론의 두 거장, 존 롤스와 로버트 노직의 이론을 중심으로, 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과 그 철학적, 사회적 의미를 살펴본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에 따라 정의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함께 고민해보자.
정의를 묻는 질문: 왜 모든 사회는 정의를 다르게 말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플라톤 이래로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이 붙들고 고민해온 문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진보해도 정의에 대한 명확하고 보편적인 합의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공정함을 정의라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그것이 정의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정의는 단일한 개념이 아닌, 다양한 사회적, 도덕적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늘 논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그 중심에는 정의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본 존 롤스(John Rawls)와, 정의를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기반한 것으로 본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의 사상이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자유주의 전통에 서 있지만, 그들의 정의론은 마치 평행선을 그리듯 상반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의의 핵심을 서로 전혀 다른 곳에서 찾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롤스와 노직의 정의 개념을 비교하며, 그 차이 속에서 왜 정의가 항상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본다. 그들의 이론을 단순히 학문적 관점이 아닌, 우리가 사는 사회 구조와 연결 지어 볼 때, 정의에 대한 논의가 왜 오늘날 더욱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존 롤스의 정의론: 공정함을 통한 정의
존 롤스는 1971년 그의 대표작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통해 정의를 "공정함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 로 설명한다. 그는 정의를 사회 제도 전반의 기본 구조와 관련된 문제로 본다. 즉, 사람들이 어떤 배경이나 조건에서 태어났는지와 관계없이,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이다.
롤스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사고 실험을 제안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별, 인종, 능력, 사회적 지위 등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의 원칙을 설계한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유리한 공정한 원칙을 선택할 것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두 가지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
동등한 자유의 원칙: 모든 사람은 최대한의 기본적 자유를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오직 가장 불리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롤스에게 정의란 단순한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공정한 기회의 제공과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핵심이다. 그가 제안한 정의론은 복지국가적 모델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고, 많은 서구 국가에서 사회 정책의 이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자유의 침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그 반론의 중심에 노직이 있다.
로버트 노직의 정의론: 자유와 소유권의 절대성
롤스의 정의론에 반기를 든 로버트 노직은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Utopia, 1974)』에서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는 정의란 공정한 절차에 의한 소유와 교환의 결과일 뿐이며, 그 결과가 불평등하더라도 절차가 정당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다.
노직은 정의로운 소유가 형성되는 조건을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리한다.
취득의 정당성 원칙: 어떤 자원이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당하게 취득되었을 경우, 그 소유는 정당하다.
이전의 정당성 원칙: 정당하게 소유된 재산이 자유로운 교환을 통해 이전되었다면, 그 소유 역시 정당하다.
시정의 원칙: 부정의하게 소유된 재산은 그 피해자에게 보상되어야 한다.
노직은 어떤 이론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평등을 강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며, 롤스식의 재분배 정책은 개인의 소유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적 노동"과 같다고 비판한다.
즉, 롤스가 사회 전체의 공정함을 강조하는 반면, 노직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절대적인 가치로 본다. 이러한 철학적 대립은 현실 정치와 경제정책에서 복지국가와 자유시장 사이의 논쟁으로 끊임없이 재현된다.
롤스와 노직의 정의론은 단순히 철학자 둘의 이론적 대립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최우선에 둘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공정함을 통해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선택과 경쟁을 통해 각자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사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의는 언제나 논쟁거리이고, 또 계속 논의되어야만 하는 주제다.
오늘날 AI, 자동화, 기후 위기, 사회 양극화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면서 정의에 대한 고민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롤스와 노직의 논의를 다시 꺼내 읽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철학을 되짚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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