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SNS 피드를 확인한다. 그곳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감성적인 글귀, 건강한 식단, 활기찬 일상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진짜'는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온라인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 존재하는 나는 어떻게 다른 걸까?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의 간극에서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철학적 자아와 디지털 자아 사이의 괴리를 들여다보며, '진짜 나'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디지털 자아의 탄생 - SNS가 만든 새로운 자아의 형식
소셜 미디어는 그 자체로 현대인의 자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과거에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가족, 학교, 지역사회 등 오프라인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팔로워 수, 좋아요 수, 댓글 반응, 해시태그와 필터를 통한 이미지 연출이 곧 '나'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디지털 자아는 철학적으로 보자면 표현된 자아이다. 이는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존재'와도 유사하다. 우리는 SNS에서 타인이 어떻게 나를 볼지를 고려하며 이미지를 연출하고, 그 이미지에 나 자신까지 동일시하게 된다. 곧, SNS 속 '나'는 나의 일부이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획된 자아이며,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구성된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디지털 자아가 점차 실제 자아의 영역을 침식해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SNS 속에서만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 삶 속의 자신 사이의 괴리를 경험하면서도, 점점 더 그 '보여지는 나'를 중심에 두게 된다.
실존적 자아의 목소리 -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
철학의 역사는 곧 자아에 대한 질문의 역사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고 말했고,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이처럼 자아란 외부가 아닌 내면의 의식과 존재에 기반한 개념이다. 현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존재를 질문하는 존재'로 보며, 타인에게 보여지는 삶이 아닌 '실존'의 삶을 강조했다.
하이데거의 개념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비본래적인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는 곧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규범에 따라 자아를 정립하려는 삶이다. SNS는 이러한 비본래적인 삶의 대표적인 양식일 수 있다. 우리는 진짜 '나'의 내면적 목소리보다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아를 규정하고 강화하려 한다.
또한, 장 자크 루소는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인간이 '자연적 자아'를 상실하고 가면을 쓴 존재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SNS의 시대, 우리는 루소가 말한 '가면 쓴 인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필터와 편집으로 꾸며낸 이미지, 감정까지 가공된 텍스트는 점점 진짜 나와 멀어지게 만든다.
진짜 나를 되찾기 위한 실천 - 디지털 자아와 실존적 자아의 조화는 가능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SNS를 끊고 디지털 자아를 포기해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SNS의 사용 자체가 아니라, 자아를 외부의 반응에만 의존해 규정하려는 태도에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내면의 진실된 자아에 얼마나 귀 기울이는가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실존적 자아는 꾸며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그 존재에 책임을 지는 자아이다. 이는 SNS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SNS 속 자아를 '연출된 자아'로 인식하고, 그것이 실존의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루 중 일정 시간을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내면의 감정을 기록하거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나?"와 같은 질문은 나와 나 자신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너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너 자신이 되라"고 했다. 진짜 자아는 말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행위와 선택, 그리고 깊이 있는 성찰 속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다. 디지털 자아를 아예 부정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곧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자각은 가능하다. 자아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존재하는 흐름이다. 우리는 SNS 속의 '나'와 실존하는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선택하며,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철학은 멀리 있는 학문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조용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순간, 우리는 이미 철학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은 왜 여전히 필요한가? - 철학이 우리 삶에 주는 실제적 가치 (0) | 2025.04.09 |
---|---|
죽음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 - 하이데거와 불교 철학에서 본 죽음 (0) | 2025.04.09 |
왜 정의는 항상 논쟁거리일까? - 롤스와 노직의 정의론 비교 (0) | 2025.04.09 |
우리는 진짜 현실을 보고 있는 걸까? -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다시 보기 (0) | 2025.04.08 |
인공지능 시대, 인간만의 가치는 무엇인가? (0) | 2025.04.08 |